'추억여행'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3.14 추억여행. Part 3 (10)
  2. 2009.03.14 추억여행. Part 2 (8)
  3. 2009.03.13 추억여행. Part 1 (8)

추억여행. Part 3

여행기 2009.03.14 13:11

원래 Part 3는, Part 2와 같은 날에 갔으나, 스크롤 압박이 좀 심한 관계로 잘랐다.

그럼 잡설없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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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선 몽촌토성역 탑승. 7호선 중곡역 하차.
중곡역은 내 고등학교인 대원외국어고등학교가 있는 동네다.
중곡역에서 내려서 한 컷.
무려 고3 말기 나의 나와바리(...) 였던 클랜 PC방은 사라졌다.
아니 뭐 나와바리라고 말은 해도 그렇게 자주 가진 않았다니까? 진짜로? 한달에 두어번 갔다고?
정말이라고?


중곡역에서 오른쪽으로 턴. 지하철 타고 통학했던 사람들에겐 익숙한 길이다.


그 익숙한 통학로 한편에 있는 집.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게 쓸데없이 좋은 집이다.
도대체 왜 이 동네에 이렇게 집을 지어 놨을까를 상당히 궁금해한 적이 많았지.


올라가다가 오른쪽에 정신병원이 보이길래 찍어 봤다.
학교가 정신병원 옆에 있는 것어서 공부를 잘 하는 거라는 근거없는 얘기도 간간히 들렸지  낄낄.


아니 이럴수가! 나의 채널큐가. 채널큐24시가!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에게 안정적으로 만화책과 판타지를 공급했었던 그 채널큐가!
망했군. 낄낄.

아니 사실 망한 건 아니고 내가 볼 땐 간판만 바꿔 단 것 같다.
안을 보니 만화책이고 판타지고 그대로더군.


등촌 샤브 칼국수.
뭐 모여서 저녁먹는다 하면 다 이리로 우르르 몰려오곤 했었지.
사진에도 그렇지만 항상 이 가게엔 외고 애들밖에 없다.
일반인 : 외고 매출 비율이 까놓고 말해서 2:8 정도 될걸 내가볼땐.
하여간 이런 데서 고딩 주제에 마구 밥을 사먹는 걸 보면, 확실히 우리학교 애들이 돈은 많다.


좀더 걸어가다 보면 나오는 세븐일레븐.
L모군. 고3 내내 거의 저녁은 여기서 끼니를 해결했었지 자네?
그렇게나 친 인스턴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하군 그래 낄낄.


오오 대중관 오오. 드디어 동네 싸구려 중국집에서 고급 중국집으로 탈바꿈 하려는건가!

그래봐야 대중관이지 ~_~;
난 상당히 애용했던 가게 중 하나.
하긴 3년 다니면서 대중관서 한두 번 밥 안 먹어본 사람이 있겠냐마는.


학교 언덕배기 앞의 모닝글로리.
여기도 학교가 많아서 장사깨나 될거다.


학교 앞 언덕배기.
그러고보니 겨울에 눈이와서 얼면 학교에서 동아줄을 내려준다는 헛소문이 있었더랬지.


수도서림. ㅋㅋ 문제집과 만화책을 주로 사던 서점. 포인트 20% 적립이었던가. 하여간 포인트도 오라지게 많이 주고, 가격도 상당히 쌌다.


학교 교문. 엄밀히 따지면 문은 아니지만.
내가 간 시간이 5시 반 즈음이라 저녁먹고 들어가는 아해들이 많았다.


교문 즈음에서 뒤돌아서 한 컷.
까치문구ㅋㅋㅋ
자매서점ㅋㅋㅋ
용케 안 망하고 있었구나 제군들.
왼쪽의 한솥은 못보던거지만.


EDAUS.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이 살던 곳. 아무래도 고등학교다 보니 그렇게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 다닐 때 한창 짓고 있었다가 고3 중반즈음에 완성된 건물. 대원 탑엘리트기숙원.
이것 덕에 다우스 장사가 될지는 모르겠다.


학교 교훈이었던 지인용. 물론 학교다닐때는 아무 생각 없었지만 이 교훈도 상당히 괜찮단 말이지.


계속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용마상.
저기 타면 서울대를 간다느니 하는 헛소문이 존재했었다. 뭐 어딜가나 그런 식의 소문 한둘쯤은 없겠냐만. 물론 그렇다고 진짜 타보지는 않았다. 진짜 탄 아해들도 상당수 있을 거라 보지만 낄낄.
아니 잠깐. 그래서 내가 서울대를 못 간건가! 그런겐가!


다 올라가서 한 컷.
뒤쪽의 건물은 뭐냐!
나 다닐 땐 있지도 않았는데! 대체 얼마나 돈을 들인거냐 학교!
졸업한지 3년밖에 안 지났다고?
지금 아해들이 우르르 서 있는 저 자리에서 지각생을 잡곤 했었지.
물론 나야 지각으로 걸리는 게 일이었지만 ㅡㅡ;;;
지각으로 걸리면 그 빌어먹을 SLG카드(아놔 ㅅㅂ)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SLG를 받지 않기 위한 다양한 꽁수들이 존재했다.
지각시간이 7시 반이었던 것 같은데, 0교시가 8시에 시작했다. 0교시래봐야 그냥 자습이므로, 애초에 7시 반이 넘어서 지각할 것 같으면 안 들어가고 밑에서 8시즈음까지 뻐기다가 8시가 넘어서 선생님과 지키고 서 있는 애들이 다 들어가면 들어가곤 했지.
지각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스킬 아니던가. 낄낄.


왼쪽을 바라보고 한 컷. 저녁에 야자를 하다가 지겨울 때 친구랑 나와서 야경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지금이야 밝아서 별로지만 어두워졌을 때의 야경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학교 내부로 들어가서 한 컷. 물론 수업중이라 대놓고 찍지는 못하고 이런 것만.
그나저나 자네들은 대체 몇 년 째 모델을 하고 있는겐가?
이름은 2명밖에 기억나지 않는군.
한명은 장현규 였던가?
나머지 이름 아는 한 명은... ㅋㅋㅋ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진 않으리라.


고3때 사용하던 인정관. 고3이라서 배려한다기보다는 왠지 격리수용한다는 느낌이었지 ㅋㅋ.


매점. 여기서도 신세 많이 졌다.


인정관 옆의 용오름길.


정비를 다 해서 지금은 포장도로다.
옛날에는 용오름길이라고 써 있는 바위 옆에 이상한 시냇물이 쫄쫄 흐르고, 이쪽은 그냥 바위로 대충 만든 계단이었지. 그야말로 등산로라는 느낌이었는데. 보기에는 지금이 더 좋지만, 왠지 옛날보다 낭만이 없어진 것 같아서 좀 기분이 그랬다.


학교 옆 산책로(?).
고3애들 공부하다가 나와서 쉬라고 만든 공간인 듯. 사실 근데 별로 여기 나와서 쉬는 애들은 없었다.
만들기는 잘 만들었지만.


학교 운동장. 옛날 급식소였던 자리에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지금은 식당 건물이 된 듯. 거 왜 일본만화 같은 거 보다보면 학교마다 학생식당이 따로 있지 않던가. 그런 식.
그리고 운동장은 다시봐도 정말 더럽게 좁다;


옆 쉼터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계단.


들어가서 한 컷. 옛날 우리 때는 그냥 임시 벽으로 대충 막아만 놓았었는데, 내부 리모델링을 싹 한 것 같다. 옛날에는 옆반 강의 소리도 그냥 다 들리곤 했었지.


화장실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지금 문 열려있는 칸이 내가 고3동안 애용하던 칸. 끌끌. 이른바 전용변기라는 거지 ㅋㅋㅋ


전용칸 내부. 청소도구 등이 같이 들어있긴 하지만. 내가 이 칸을 이용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다른 칸에 비해 훨씬 내부가 넓다. 이것 외엔 이유가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인정관 1층. 정말 꼬질꼬질하고 먼지만 가득 쌓여 있던 곳인데 나름대로 깔끔하게 정리한 듯.


위에 있던 학생식당 내부. 음식이야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리고 사진찍기 민망해서 찍지는 않았지만, 이 식당 건물과 본관 쪽이 연결되어 있길래, 그곳으로 나가다가 우연히 어떤 반을 보니, 고3 담임선생님이셨던 권중모 선생님(...)이 계시길래, 나오시길 기다렸다가 인사드렸다. 약 30분간 담화를 한 후 퇴장.
교무실에 권중모 선생님 말고도 다른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는데, 다들 내가 휴가나온 군인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보시더군. 덕분에 때아니게 교무실에서 군대얘기가....
휴가나와서 학교를 온다고 상당히 신기하게 보신 선생님도 계셨지.
ㅋㅋㅋㅋㅋ 원래 내 사고방식이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 않은가.


오오 책사랑 오오.
고3때 애용했던 그곳.


여기까지 둘러보고, 중곡역으로 다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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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이틀간의 여행은 끝이다.
사람이 너무 과거에만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겠지만, 너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건 그것대로 쓸쓸하다.
간혹가다 추억에 잠기는 것 정도는 상관없지 아니한가!

그게 좋았던 시절이든, 나빴던 시절이든. 다 지나갔기에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것이고, 지났기에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지금은 군복무를 하고 있지만, 나도 분명히 술자리에서 군대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즐겁게 떠들 날이 있을 거고, 그런 시절을 추억하게 될 어떤 날이 또 있을 거고.

This, too shall pass away......

과연 나는 죽을 때 헛살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아무런 미련 없이 죽을 수 있을까.

사람의 인생의 목표란 것이 여러가지겠지만, 요즘들어 이렇게 생각한다.
죽을 때 '다시 살아도 이것보다 더 잘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라는 기분을 느끼면서 죽고 싶다.

갑자기 웬 죽음 얘기냐 하지만. 지금껏 내가 했던 추억 얘기와 별반 다를 건 없다. 그냥 연장선이지.
지금 내가 지난 10여년의 추억을 이야기한 것처럼, 언젠가는 지난 30여년의 추억을, 언젠가는 지난 50여년의 추억을, 언젠가는 지난 7~80여년의 추억을 얘기할 날이 있을 게 아닌가.
결국 마지막 날에는 인생을 추억하겠지.

휴가중에 기껏 몇 군데 다녀왔으면서 뭔놈의 센티멘털한 소리냐 할 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런 걸 쓰고 싶은 기분이거든.

아무튼 계획대로 다 돌아봤고, 이제 이쯤에서 머릿속에서라도 자꾸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그만둘까 한다. 가끔씩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괜찮지만, 계속 과거에 묻혀 사는 것은 그것대로 한심하니까.
뒤는 이제 그만 돌아보고, 다시 앞을 바라보며 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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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일레

추억여행. Part 2

여행기 2009.03.14 02:47


추억여행 2편이다. 잡설 없이 바로 간다.

1편보다 더욱더 긴 스크롤 압박이 있으니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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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속터미널역에서 3호선 탑승. 그대로 종점인 대화역까지 직행.


대화역 내부. 고양시 일산이다. 4학년 1학기까지 상계동에서 학교를 다니고, 4학년 2학기부터 졸업까지 일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웠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역을 굳이 찍어 놓은 이유는, 새삼스럽게 역의 크기에 놀라서다. 여기가 이렇게 컸던가.


대화역에서 나와서, 바로 학교 방면으로 향했다. 학교 교문 앞 길. 이곳의 풍경도 변함없다. 교문 앞의 아이스크림 가판대도 똑같다. 자주 온 것은 아니었지만 여름에 대략 1주일에 1번 정도의 비율로 와서 아이스크림을 팔곤 했다. 아이스크림도 있었고, 달고나도 있었고. 학교 앞에서 파는 흔한 불량식품류였지.


교문 앞. 대다수의 애들이 이곳으로 통학했다.


교정.
실내화가방 걸어놓는 저 걸이대가 옛날에도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기는 한데 미묘하게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여간 살짝 혼란스러웠다.


내가 주로 애용하던 오른쪽 문. 학교 내부에서는 100% 실내화 착용이었기에 저기서 매일 신발을 갈아신었었다.

학교 문 앞. 대문짝만한 저 글자들은 옛날엔 없었던 것 같지만. 그 외엔 그대로다.
초등학교때 풍물패 활동을 1년가량 했었는데, 학교 행사라거나 하는 게 있으면 문 앞에 앉아서 사물놀이를 했었다. 난 북을 쳤었지. 물론 제대로 북을 치려면 다르겠지만, 초등학교 수준의 사물놀이에서는 아무래도 북이 가장 쉽다.


6학년 반이 있던 복도. 지금은 5학년인 모양이지만, 내가 다닐 때는 끝에서부터 6-1,2,3반이었다.
그때만 해도 막 동네가 개발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때라, 반이 3반까지밖에 없었다. 밑으로 새로 들어오면서 계속 늘어났었지.
지금 사진에서 5-1반으로 되어 있는 교실은, 또 나름의 추억이 있다. 지금이야 교실이지만, 우리 때는 교실은 있는데 학생이 없어서 저 교실에 탁구대를 놓고 탁구실 (-_-;;)로 쓰고 있었다.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생애 처음으로 피터지게 치고박고 싸운 장소이기 때문. 그 싸움의 이유란 게 또 굉장히 어이없다. A와 B가 있었는데, 둘 다 친구였다. 나와는 친구였지만 A와 B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는데, 어느날 B가 A에게 맞았다. 왜 맞았는지는 모르겠고. 그 소식을 들은 내가 B에게 '야 너 A한테 졸라 맞았다며?' 라며 속을 긁었다. 물론 그냥 물어본 것이지만, 나의 말투를 아는 사람은 내 말이 듣기에 따라서 굉장히 싸가지 없게 들릴 수 있다는 것도 잘 알 터. 안그래도 심기가 불편하던 B는 그 말에 폭발. 바로 내 콧잔등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리기에 이른다.
때문에 코피가 줄줄 나기 시작했다. 보통 초등학교 싸움이란 게 먼저 피 보고, 먼저 우는 쪽이 지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달랐다. 피를 보고 광폭화 상태에 진입한 나는 코에서 피를 줄줄줄 흘리며 도망가는 그놈을 끝까지 쫓아가서 계속 팼다. 처음 한 대 빼고는 한대도 안 맞은 것 같다 -_-;
그 이후로 걔는 도망가기 바빴고, 나는 미친듯이 쫓아가며 때리기 바빴으니까.
생각해보면 주변에서 얼마나 어이없었겠는가. 한놈은 죽어라 도망가고, 한놈은 코피를 줄줄줄 흘리면서 쫓아다니면서 패고. 결국 막판에 내가 3~4명에게 양호실로 연행되면서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Berserk 모드였지 끌끌.


오호 통재라. 10년이 지났는데도 화장실은 그대로구나. 잠시 이 학교 애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5학년때 반이었던 5-2 자리. 지금은 4-3이군.


식수대. 나 있을 땐 이런 거 없었다. 층층마다 다 있더라. 필요가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지만.


방송실. 5학년때 1년간 방송부 활동을 했었다. 6학년 되면서 다른 하는 게 많아져서 관뒀지만.
때문에 간간히 교내에는 내 목소리로 전체 방송이 울려퍼졌었지. 낄낄.


3월 초니까, 아무래도 전교'어린이'회장, 부회장 선거 시즌인 것 같았다.
6학년 때, 전교'어린이'부회장이었다. 사실 나가려는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얼떨결에 입후보했는데 단독 입후보라 무투표 당선되었다. 대략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자면, 나랑 절친했던 놈이 학기 초에 전교회장 얘기를 대뜸 꺼냈다. "야 나 전교회장 나갈까?" 라면서. 나는 "엉? 너 나가면 내가 부회장 나갈게 그럼" 이런식으로 대답. "어 그래? 나갈까?" 까지 하고, 나는 바로 담임선생님께 입후보 의사를 밝혔다. 그러고 생각없이 있었는데 결국 이놈이 회장 입후보를 안 해서 썰렁하게 나만 부회장에 입후보하게 된 거다. ㅋㅋㅋ 결국 전교 회장 후보는 여자애 2명이고, 부회장 후보는 나 혼자. 이 때의 선거라는 것이 그 후보가 누구고 공약이 뭐고 어쩌고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일단 남자애는 남자 찍고, 여자애는 여자 찍는 것이 기본적 생리였기에 회장 입후보를 했으면 내가 회장이 되는 것이 거의 당연했겠지만, 이 당시의 나는 아무 생각 없었기에 그냥 부회장으로. 전교회장이었던 애 이름이 주소영이었던가.
내가 졸지에 부회장 된 덕분에 엄마는 갑자기 뻘쭘하게 학부모회장을 했었다. (회장 엄마가 안 한다고 했었다.)


학교에서 나와 다시 위에 찍어놨던 교문앞 길을 잠시 걸으면 횡단보도. 학교가 있는 블록은 아파트만 있지만, 이 길을 경계로 이쪽 블록은 다 주택이다. 나는 주택에 살았었거든.


ㅋㅋㅋㅋㅋㅋ. 러시아 피아노 ㅋㅋ. 옛날에는 도요새 피아노였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찍어 놓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私の彼女があそこに住んだ
ㅋㅋㅋ.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보겠지만.
일단 바로 써 놓기는 민망하니까. 잇힝~.

도요새 피아노는 그애 엄마가 하던 음악학원. 걔는 3층에 살았었지.
내부는 겁나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두번 간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오오 이집 좀 짱인듯'. 이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걔는 하프를 켰었는데, 매주 한두번 씩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레슨을 받는다고 했다.
하프라니. 그런 비주류를!
하프는 악기의 가격도 기본빵이 1000단위가 넘어갔다. (그때 가격으로)
역시 돈이 많은 집이었어!

걔네 집에 갔을 때, 하프를 한번 켜 준 적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오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 좀 짱인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 민망한 추억이군 낄낄.


우리집이었던 집. 여기 3층이 우리집이었다. 딱 우리가 이 집이 지어지고 난 직후에 이사를 가서, 그 때 당시에는 완전히 새 건물이었지.


들어가는 입구. 바닥의 타일도, 왼쪽의 수도꼭지도, 오른쪽의 빨간(-_-;;) 울타리도 그대로다.
우리가 살 당시에는 새 집이니까 빨간 울타리의 색이 완전 빨강이었는데, 어린 눈에도 굉장히 촌스러워 보였었다. 대체 왜 빨간색일까. 지금 보아하니 처음 지을 때 칠하고 신경 끈 모양.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세월의 흐름인지 벽에 좍 금이 가 있다. 물론 내가 살던 땐 없었지.


3층 문 앞. 3층이 통째로 한 집이다. 도어록만 빼면 문도 옛날과 똑같다.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건 아니다 싶어서 그냥 나왔다.


동네 놀이터. 물론 이동네 살던 때는 놀이터에서 계속 뛰놀만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오른쪽의 모래판엔 나무로 간단한 미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다 철거한 듯.


장성마을. 행정상의 구분은 다 있지만, 일산 사람들끼리 어디 사느냐고 물을 때는 보통 마을 이름으로 대답할 때가 많았다. 내가 살던 곳은 장성마을. 근처에 성저마을, 문촌마을 정도가 있다. 왜 마을이름으로 부르는 지는 미지수. 다만 일산의 아파트에는 아파트 이름이 메인이 아니라 마을이름이 메인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처음 이사갔을 때는 성저아파트 문촌아파트인 줄 알았지.


복사집 오른쪽 자리는 옛날에 신당동 떡볶이집이 있던 곳인데 사라졌다.
원래 가게 자리였는데 위쪽 벽과 색깔이 다른 거 보니 집으로 용도변경하면서 급하게 막은 듯.
아줌마랑 친해서 내가 가면 돈보다 훨씬 많이 주곤 했었다.

동네 뒤쪽으로 나가면 일산 번화가로 가는 대로가 나온다.
오른쪽에 보면 자전거용 포장도로가 깔려 있는데, 일산은 전 시내에 걸쳐서 자전거도로가 굉장히 잘 정비되어 있다. 자전거 없이는 못 사는 동네. 초등학생의 필수품 중의 하나가 자전거였다. 자전거 한 대면 일산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없으면 한참 걸어야 하니까.


그대로 죽 걸어서 일산 호수공원으로 이동. 일산에 와서 호수공원을 안 보면 섭하니까.
말 그대로 호수가 있어서 호수공원이다. 호수물은 당연하게도 별로 깨끗하지 않지만.
심심하면 자전거 타고 많이 왔다. 엄마나 아빠 손에 끌려서 강제 산책(...)을 한 적도 많고.


그냥 오리들이 있길래 찍어봤다. 별 의미 없는 컷.


시간이 별로 늦지 않았길래 풍납동으로 이동했다.
풍납동은 중학교 때 살던 동네다.
3호선 주엽역에서 탑승. 8호선 강동구청역 하차.
집 앞 사거리다. 저 멀리 보이는 맥도날드. 맥도날드 망한 거는 왠지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파트 단지 입구. 난 바로 보이는 101동에 살았다.


등교 루트. 사진의 미니스톱은 이 동네서 노는 애들의 집합장소로 자주 활용되곤 했었지.


거봐. 말하기가 무섭게 모여 있는 그분들. 바지 치마 줄인 거 보면 바로 사이즈 나온다.


풍기진생이라니! 저자리는 옛날 책마당이 있던 자리 아니던가!
중학교 2학년부터 거의 매일같이 다녔던 책마당이 사라지다니!
학교에 보면, 매번 만화책을 빌려오는 애가 있다. 보통 다른 아이들은 자기가 빌려 보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매번 빌려오는 애가 빌려온 걸 학교에서 빌려서 읽게 된다. 나도 처음에는 학교에 다른 애가 빌려온 걸 읽다가, 아니 이게 자꾸 중간에 끊겨서 감질맛나는거다. 그러던 와중 내 친구 하나가 어느날 같이 하교를 하는데 책마당에 들어갔다. 멋모르고 따라 들어갔다가 갑자기 보고 싶은 만화가 생겨서 바로 가입. 그이후로 나의 만화인생이 시작되었다 ㅋㅋ. 그전까지는 내돈으로 만화 빌려볼 생각은 하지도 않던 모범생이었다구.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운 거지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는 일사천리인 법이다.
덕분에 우리반에 매번 만화를 고정적으로 빌려오는 놈이 1명 있었는데, 내가 거기 가담해서 2대본좌 라인을 형성했었지.


학교 등교길에 항상 지나갔던 지하도. 구질구질한 건 변함없다. 여름엔 노숙자도 있을 분위기. 본 적은 없지만.


학교 후문. 우리학교는 정문으로 등교하는 사람은 전체의 5%가 될까말까하고, 대다수의 애들이 후문으로 등교했었다. 8시 30분을 경계로 지각을 구분했는데 8시 반이 되면 후문을 닫고, 애들을 다 정문으로 돌아가게 한 후 학생주임이 운동장 뺑뺑이 같은 걸 좀 시키고 들여보내곤 했었다.
나는 선도부였기에 뒷문에 서서 지키면서 애들이 오면 정문으로 가라고 보내는 게 일이었으나, 간혹 친한 애들이 애처로운 눈길로 열어달라고 간청할 경우는 여린 마음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끔 열어주곤 했다.


학교 뒷문.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이리로 들락날락했다.


2층. 교무실이 있는 층인데, 학교 구조가 괴악해서 2층이 이게 끝이 아니라 화면 끝에 있는 유리문이 교무실이고, 교무실 너머로 또 쭉 교실이 이어진다. 물론 일반 학생이 교무실 통과하지 않고 반대편 교실로 가려면 한 층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이동한 다음 갔어야 함. 지금 생각해도 정말 괴악한 구조.


2-5반이었던 자리.
2-5반 때 담임선생님이 지금까지 날 가르쳤던 모든 담임선생님 중에서 가장 좋았었다.


교훈. ㅋㅋㅋ 물론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걸 보고 생각났다.


1-12 자리. 이상하게 지금은 예체능부 부실로 바뀌어 있다.


학교 운동장. 우리학교가 우레탄 트랙이니 우레탄 구장이니 하는 거 시범학교라서 상당히 일찍 저런 게 깔렸다. 물론 효용성은 글쎄. 농구할 때 확실히 흙바닥보다 좋긴 했다.


학교 옆의 올림픽공원. 이름에서부터 그렇듯 88올림픽 때 만들어진 것. 도심에 있는 공원 주제에 넓기는 정말 지랄맞게 넓다.


평화의 문. 과 앞에 있는 광장.
중 3때가 2002년이라 월드컵을 했었다. 여기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소위 말하는 거리응원을 했었더랬지. 우리반 애들 중 반 정도가 갔었는데, 애초에 가자고 애들 꼬드긴 게 나라서 ~_~;


평화의 문 가운데에 있는 성화. 88올림픽 대 붙였던 그 성화겠지.
그런데 항상 성화봉송이니 뭐니 할 때부터 계속 생각났는데, 그거 진짜로 안 꺼지고 오는 게 맞나?
중간에 사고로 꺼지면 '야 그냥 몰래 다시 라이터로 붙여' 라던가 하는 상황이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지. 솔직히 온 사방을 바리바리 돌아서 온 그 성화가 중간에 한번 꺼졌다고 처음부터 다시 하겠냐고. 그렇게 될 경우 체면도 말이 아니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볼 때는 분명히 중간에 성화 꺼졌는데 몰래 지들끼리 다시 붙이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전달한 예가 꽤 있을 거다.


이번에 돌아다니는 내내 내 사진 찍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주변 돌에다 올려놓고 예약셔터 기능으로 한번 찍어봤다.


이건 손에 들고 한 번. 생긴 걸로 태클걸지는 말자 낄낄.

여기까지 하고, 바로 뒷편의 몽촌토성역으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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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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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일레

추억여행. Part 1

여행기 2009.03.13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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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여행. 거창하게 여행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과거에 살았던 곳을 한번씩 둘러보고 온 것 뿐.

나는 이사를 비교적 많이 다닌 편이다. 기억이 명확한 7살때부터 23살인 지금까지

4번정도 다녔으니까.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22살까지 하면 대략 15년간 4번이니, 3~4년에 1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는 계산이다.


이번 휴가는 애초에 친구들에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나온 휴가고, 혼자 놀기로 작정했으므로

혼자 노는 김에 과거 내가 살았던 동네를 죽 돌아보기로 한 거다.

사실 돌아보기로 한 게 먼저고 연락을 안 하기로 마음먹은게 나중인지,

연락 안 하기로 마음먹은게 먼저고 돌아보자고 생각한 게 나중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은데,

뭐 어떠랴.

그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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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는 상계동에서 살았다. 정확히는 7살 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1학기까지.

비교적 오래 산 동네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동이 편한 동선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먼저 살았던 곳을 먼저 갔고, 도착한 후에도 그저 발 가는 대로 움직였을 뿐.

우선 고속터미널에서 7호선 탑승. 마들역 하차.


마들역에서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방면으로 올라가는 길.
여기서 웃음이 피식 나온 것이, 4학년이면 11살, 12년 전의 모습만 기억나는데도 어쩐지 이 풍경은 옛날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교문 앞에서 한 컷. 사립 청원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국민학교였지만.


무려 급식센터! 옛날에는 있지도 않았던 건물이다.


학교 운동장 전경. 초등학교 때는 그리도 넓어 보였던 운동장이 지금 보니 터무니없이 작다.
100m 달리기도 대각선 아니면 못할 것 같을 정도의 크기.
나이를 먹고 커서 그런지, 연병장 사이즈에 눈이 익어서 그런지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 건물. 저 문은 그대로구나.


건물 내부. 내가 다닐 때에 비해 터무니없이 좋아졌다. 리모델링에 상당한 돈을 부은 듯.


정문 앞의 동상. 왼쪽 조각이 횃불을 들고 있는데, 이 학교의 주요 상징물 중의 하나가 횃불이었던 것은 기억난다. 의미는 잘 모르겠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본관(?) 건물. 이름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 엄마가 학교 등록금(...)을 쥐어 주면 여기로 와서 냈던 기억이 난다. 그거 내러 갈 때는 여기가 그리 멀더니, 다시 와 보니 코앞이다.


대운동장의 스탠드. 아까 운동장은 소운동장이다. 소운동장은 초등학교, 여고가 사용하고 여긴 남고, 중학교가 사용한다. 초등학교 대운동회도 여기서 했지. 사진에 찍힌 스탠드에 가족과 애들이 좍 앉아서 구경했었던 기억이 난다.


구령대에서 찍은 대운동장 전경. 사실 여기도 그냥 평범한 크기의 운동장인데, 초등학생 때는 여기가 참 지랄맞게 커 보였지.


이쯤 구경하고 교문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쪽으로 돌자 굴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12년 전에도 있던 굴뚝이다. 용도는 당최 모르겠지만. 이 굴뚝을 볼 때마다 저기 올라가면 얼마나 끝내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옛날생각나서 한 컷.


교문에서 아파트단지로 올라오는 길.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들과 같이 여자애들 놀리면서 도망쳐 올라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놀리는 애들도 매일 같은 멤버, 놀림받는 여자애도 매일 똑같은 애였다.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별명이 족제비였던 건 기억나는군. 남자애들 서넛이서 '야 족제비~!' 하면 여자애가 '이 씨~' 이러면서 쫓아오고, 우리는 신나서 도망갔었다. 물론 이 길을 보기 전까지는 이런 내용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이런 느낌 때문에 와보고 싶었던 거다. 이것도 추억이구나.


아파트 앞 버스정류장. 외할머니 댁과 우리 집은 가까웠었기에, 심심하면 외할머니 댁으로 놀러 가곤 했었다. 그때 이 정류장에서 35번 버스를 타고 갔었지.


아파트 앞 상가. 허름한 건물은 그대로다. 하긴 부술 리도 없으니 그대로인 게 당연한가.


내가 살던 201동 앞. 이쪽은 뒷문이다. 이 풍경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역시 보기 전까지는 생각도 못 했지만. 좌우측의 철봉(?)과 쇠사슬마저도 그대로다. 저 멀리 벤치도 그대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군.


아파트 내부. 이 모습도 바보같을 정도로 그대로다.


엘리베이터 안. 12년 전에도 다 낡은 엘리베이터였는데, 아무래도 지금도 12년 전의 바로 그 엘리베이터인 것 같다. 버튼부터 똑같다. -_-;; 이거 위험하지 않나;;
내부는 물론 더럽게 좁다. 10명이나 겨우 타려나. 자전거 1대도 세워서 겨우 들어갈 사이즈.
엘리베이터는 작은데, 사람은 많으므로 여기서는 짝수층, 홀수층 나눠서 엘리베이터를 2대 운용했다.


내가 살던 집 앞 복도.


옛날 우리집. 1207호. 아무래도 문짝마저 옛날 그대로인 듯 싶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다른 사람 소유.


아파트를 나와 보람상가로 이동. 들어가자마자 문구점이 보인다. 이것도 역시 기억 그대로.
물론 옛날보다는 물건이 많이 늘어 조금 난잡하지만 위치는 같다. 나의 초등학교 준비물의 9할은 여기서 샀으리라.


상가 3층의 바둑학원. 설마 아직도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옛날에 다녔던 바둑학원이다. 안 망했다는 점이 정말 미스테리.


옆의 태권도장. 우광체육관이라는 이름이다. '태권태권도우광체육관아!' 라고 기합을 넣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누나.


상가를 나와 위쪽으로 더 올라가보았다. 지금은 롯데리아와 GS 슈퍼마켓이 들어서 있지만, 12년 전만 해도 이 자리는 넓은 공터였다. 동춘서커스단에서 여기에 천막치고 공연했던 기억도 나는군.


7살때부터 다닌 유치원 겸 음악학원이었던 연세음악학원 건물. 지금은 망했는지, 옮겼는지 보이지 않고 웬 이상한 카페와 보험회사가 들어서 있다. 원장선생님이 매우 무서운 사람이었다. 연습을 안 해 오거나, 피아노를 못 치면 인정사정없이 쏘면서 손바닥을 때리는, 정통 스파르타식 훈련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즐기면서 쳐야 했을 피아노가 다시없는 고문이 되었지. 물론 고문이 되든 어쨌든 실력은 굉장히 많이 늘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이래뵈도 음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 정도 받는 실력이었다. 낄낄. 다만 이 때에 너무 혹독하게 배워서 학을 뗀 나머지, 이사 간 후에는 피아노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해서 한신아파트 쪽으로 올라갔다.
문득 보이는 비디오 1번지. 왠지 낯이 익다 싶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옛날 엄마가 매일 비디오 빌려다 보던 그 가게였다. 가게 이름마저 똑같은 걸 보니, 아무래도 그간 용케 안 망했던 모양.


한신아파트 앞. 나랑 친한 놈들은 죄다 여기 살았기에, 여기도 나의 주된 활동권 중의 하나였다.
굳이 저 구조물을 찍은 이유는, 역시 옛날생각 나서다.
옛날에 뛰어올라가면서 놀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에서 나와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나온 놀이터. 보자마자 역시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나와 내 친구들이 가장 애용했던 놀이터다.
'탈출' 이라는 놀이를 아는지? 술래는 눈을 감고 놀이터 구조물 제일 아래에서 더듬더듬거리면서 올라오며 다른 애들을 잡고, 다른 애들은 '땅에 발을 닿지 않고' 구조물만을 이용해서 이리저리 피해다녀야 했던 놀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술래는 땅을 밟아도 상관없다.
내가 가장 애용하던 장소가 지금 사진에서 하얀 옷에 청바지 입은 애가 엎드려 있는 곳이다. 저 구석 기둥을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으면 웬만한 술래들의 팔 길이로는 닿지 않았기에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
물론 술래도 저 위치를 알고 있기에 근처로 와서 잡으려고 손을 휘휘 젓는데, 안되겠다 싶으면 옆의 미끄럼틀로 뛰어서 피신하는 게 포인트였다. (물론 미끄럼틀은 바로 소리가 나서 위치가 들통나기 때문에 비상사태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었다.)

후후. 이것도 다 옛날 추억이구나.


다시 마들역쪽으로 죽 내려와서 한참을 계속 걷다 보면 성당이 나온다. 내가 세례를 받았던 성당.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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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첫날 여행이 끝났다.

Part2 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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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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